창작과 비평 09년 가을호 졸문의 리뷰

 

문학지 [창작과 비평]은 1966년 창간된 계간지로 이번 가을호로 통권 145권째를 맞았다. 그 긴 역사를 함께한 사람도 수두룩하겠지만 나는 고작 여덟번째 만남을 가진, 작게 써야할 애독자다. 07년 겨울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우연히 서점에서 본 계간 문학지 창비의 표지에 적혀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구입하며 창비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펼친 것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특집의 제목마저 기억한다. '한국문학- 세계와 소통하는 길'. 물론 처음에는 환상소설과 연관해 생각하며 읽기 시작했었지만, 나는 첫 페이지를 펼쳤고 그리고 새벽이 깊어지도록 계속해서 읽어나가게 되었다.

 그때까지 읽어봤던 그 어떤 책에서도 지성적인 부분을 그렇게 두드려본 적이 없었다. 과학동아가 어떤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이해력을 높여주는 영향을 주었다면 창비는 나를 사회참여적인 지성의 길로 떨어뜨렸다. 내가 입만 살아있는 채로 있을지, 아니면 정말 무언가에 대해 알아갈 것인지 쪽마다 내게 물어보고 있었다. 

 그 영향력은 매 호마다 그대로 담겨있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언제나 있고 머리가 아파질 정도로 깊이있는 담론에서는 그냥 발을 쑥 빼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고 싶어질 때도 많았다. 가끔 나는 생각했다. 이걸 그냥 덮어버리면 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샀다는 것만으로도 문학에 어느정도 이해를 하고 있고, 어느정도- 즉 남들 이상- 문학에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은가. 계속되는(혹은 강요되는) 지성의 길에 그렇게 다리를 후들거리면서 나는 지금까지 왔다. 그래서 말할 수 있다. 내 깜냥으로는 책을 비평할 여지가 없다고. 하지만.
 기껏 써봐야 며칠 뒤에 보면 홍조로 얼룩질 졸문을 남길 것이 분명하지만 그저 내가 할 수 있을 듯한 여지만 두드려보려 한다.

 이번호의 특집인 '한국사회, 대안은 없다' 좌담을 포함 사설에서는 창비 특유의 당면한 사회문제에 대한 피하지 않는 깊은 성찰이 돋보였다. 지난 호의 권성우와 황정아의 산문과 '논단과 현장' 에서 다뤘던 인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좀 더 넓혀본 듯한 기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는 서로를 헐뜯는 것 이외에는 뚜렷한 일관성이나 당위성이 없는데, 그 관계를 어찌해야 좋을지는 아직도 미지수라고 본다. 사실 아무리 말을 잘해봐도 쟤들이 들어야 말이지.(...)
(요즘의 연예인 사태를 포함한 한국 내의 혐한류 또한 가치의 판단 단위에서 결국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이는 나중에 기회가 될 때 써보기로 하겠다.)

 가장 하고픈 말이 많은 창작란 부분, '시'의 첫장은 고형렬 시인의 '수박'과 '브롱크스 장터를 간 시인'이 자리를 잡았다. '수박'은 특히 다른 시들에 비해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시어의 이미지화는 쉽지만 무언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지 연계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대표적인 부분이 여기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된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수박은 늑대새끼들처럼 돌아다니며 아무데서나 사냥하고 새끼 치지 않았으니까."(6연 中)
 
 무언가 알 것 같으면서도 당췌, 모르겠다. 
 그에 비해 '브롱크스 장터를 간 시인'은 읽기가 수월했다. 닭에서부터 닭을 파는 상인을 돌아 시인으로 그리고 다시 닭, 그리고 시인으로 인물의 시점-이라고 해야 할까?-이 변해가며 서사하고 결국 작자에게로 돌아간다. 생명의 희망도 거래도 짧은 외출도 한낮이라는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이 흘러가버렸다.

 어찌보면 '브롱크스 장터를 간 시인은' 김경미 시인의 '육식성의 아침'과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오늘의 식탁은 청속색 호수다/식탁 위가 없는 접시엔 갓 뽑은 몇그루 나무들/뿌리째 눕혀져 있다/채소를 먹으면 귀가 청명해지고 목이 길어진다지만//
오늘의 나는 중요하다/곧 물 먹으러 온 저 코뿔소가 접시에 놓일 것이다/인류의 범위는 절벽 위 산양에서부터/이에 피가 끼는 식인종까지라는데/그중에 나는 어디쯤인지 모르지만" (1-2연)

 단순히 '잡아먹는다' 는 부분 때문이 아닌, 삶에 연관해 죽음과 연결한 고리 때문일 것이다.

 김경주 시인의 '바늘의 무렵' 의 마지막 연

"이불 속에서 누군가 손을 꼭 쥐어줄 때는 그게 누구의 손이라도 눈물이 난다 하나의 이불로만 일생을 살고 있는 삶으로 기꺼이 범람하는 바늘들의 곡선을 예우한다"

 과 김기택 시인의 '구직'에서의

"조금만 익숙해지면 지하철도 목욕탕 같아서/남들 앞에서 다 벗고 다녀도 다 입은 것 같을 것이네/갈비뼈가 무늬목처럼 선명하고/아랫도리가 징처럼 울면서 덜렁거리는/이 치욕을 자네도 한번 입어보게"(16-20행)
 
 부분, 그리고 김신용 시인의 벚꽃 아래에서의 

"그러나 노래는... 꽃그늘에 인공호흡기처럼 매달려 있어/그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면... 한줄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 같아"(3연)

 싯구와 송경도 시인의 '이 삶의 곡가에서 잊혀질까 두렵다'의

"멀리 있는 혁명보다 가까이에서 안아줄 사랑이 간절했다." (3연)

 들 역시 모두 삶의 이야기를 길지 않게 하지만 무게있게 이야기한다. 많은 작품이 시 란을 간만에 가득 채웠다. 모든 시에 하나하나 평을 쓸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소설' 란에서는 배수아 작가의 '무종'이 자리를 잡았다. 하나의 호흡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듯 쓰여진 이야기였다. 담배연기를 품은 한숨인 듯 흐렸다. 긴 서사에 허덕이며 세번을 읽었지만 나는 아직도 무엇을 말하는지 뚜렷히 알지 못하겠다. 김사과 작가처럼 독자를 화자와 일체할 정도로 같은 상황으로 몰아가는 듯한 느낌은 확실히 들었다. 분명 서사로서의 가치는 있지만 독자 자신에게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윤고은 작가의 '달콤한 휴가'. '운수좋은 날' 이후 제목에 형용사가 붙으면 대개 반어법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아 이건 글쎄. 반어법이면서도 반어법이 아니다. 도시괴담같은 이야기에 과민반응을 하는 내용인데, 빈대가 그 소재-이며 주인공-이다. 왠지 읽는 내내 몸이 가려웠다.

 이호철 작가의 '오돌할멈 손자 오돌이', 창비에 실린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오돌이,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캐릭터인가. 밉지 않은 고문관 일등병, 북한군마저도 추석 잘 지내라며 고이 보내준...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이런 사람이야말로 사회의 보물이다. 

 김연수 작가의 '바다 쪽으로 세 걸음'. 드디어 세번째 편이다. 이 작품은 16세기 역적으로 멸문지화를 당한 형제의 이야기이다.
 
"(중략)형의 눈앞에서 키리시딴(크리스챤)의 신을 저주하는 욕설과 함께 한때 내 목숨을 구해썬 로싸리오의 끈을 이빨로 끊어 그 십자가와 구슬들을 나가사끼 앞바다에 내던지기 전까지는(중략)"

 를 비롯

"(전략)그리고 성모님이 우리에게 말했다. 너희는 바다를 건너가게 될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다른 나라의 말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아마도."

 라고 쓰인 삼 편의 끝까지 읽고 나니 해외에서 상선을 타는 기독교를 증오하는 인물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되는데 과연 어떤 인물이 될지 궁금하다. 해적? 생각보다 기독교의 이야기도 많은데, 교과서에서 읽던 이야기보다도 이렇게 소설로 읽게 되는 부분이 더 가깝게 다가오는 건 작가의 역량 덕분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유년은 끝났지만(그러므로 형보다 내가 삼년쯤 더 억울했지만)" 이라든가 천재지변으로 임금이 내린 교서에서 "나는 부족한 덕으로..." 라는 부분에서 '아시는군요!' 라든가 하는, 장편임에도 무거운 부분마다 슬쩍 실소를 머금게 잘 배치된 유머가 좋았다.

 내가 쓸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다. '논단과 현장'의 '신라통일 담론은 식민사학의 발명인가' 라든가 '문학평론'의 '존재론적 비명으로서의 시적인 것' 까지는 내가 감히 넘볼 처지가 되지 않는 듯 하다. 내 한계와 자신감이 어디까지일 것이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 함이 내 수준을 보여주기에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지만 또한 내가 바치는 찬사로는 최고의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창작과 비평 09년 가을호, 145호의 부끄럽지 그지없는 리뷰를 마쳐본다. 뭘 그리 열심히 했다고 어느새 날짜가 변했다. 난 여전히 비틀거리지만 길은 여전히 쭉 있고 겨울호가 저 모퉁이에 서 있다. 저기까지 다시 힘겹게 걸어봐야겠다.


렛츠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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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량먹보 | 2009/09/10 00:51 | Tale-책, 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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